주돈이의 태극설
성리학은 전개과정에서 많은 학파와 학설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학파들은 서로 다른 방면에서 유학을 계승 발전시키려 합니다. 이들 가운데 주희의 철학 체계 형성에 영향을 끼쳤던 “주돈이”, “장재”, “정이”의 철학을 살펴보고 주희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주돈이의 태극설입니다. 주돈이는 북송 시기의 철학자이며 태극설을 설명합니다. 태극설은 주희의 철학에 주요한 영향을 끼치는 학문입니다. 태극설은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낳고 움직임이 다해 고요해지면 음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번 움직이면 한번 고요해지는 것을 우주 만물의 근본적인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형태가 자연의 변화를 만들고 이런 자연변화 양상을 각각 음과 양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렇게 교대로 일어나는 음양의 활동을 통해서 오행이 생기며 오행이 다시 분화하여 우주 만물이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주돈이는 태극 - 음양 - 오행 - 만물 순서인데 이것을 우주 생성에 관한 이론이라고 설명합니다. 우주 생성을 예로 들면 우주 생성의 바탕에 태극이 있고,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분화하여 만물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음양의 변화로 생성된 만물 가운데 인간이 가장 뛰어난 존재임을 주장해 만물 속에 인간의 위치를 확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주돈이의 태극도설에 나오는 “무극 이태극”이라는 표현입니다. 우주의 바탕에 태극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무극이라는 표현을 써넣었다는 것입니다. 태극을 정점에 두려던 주희에게는 무극의 개념이 부담스러운 존재였습니다. 무극에서 태극이 나왔다고 하면 태극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곳에 무극을 설정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희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주희는 존재하는 세계의 모든 것을 리와 기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극은 리의 다른 표현으로 간주합니다. 태극은 모든 리의 총합 또는 리 중에서도 최고의 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주는 태극으로부터 시작되며, 태극은 만물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도덕 가치의 원천이 됩니다. 주희는 태극을 최고 개념으로 보아 태극에 앞서 무극을 설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희는 무극을 태극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석하게 됩니다. 태극은 우주 만물의 최고 원리로 초월한 영역으로 보고, 이 초월한 영역은 형체가 없으므로 무극이라는 표현을 붙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주희는 무극 이태극을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무극을 말하지 않으면 태극은 하나의 구체적 사물과 같게 되어 온갖 변화의 근거가 될 수 없고, 태극을 말하지 않으면 무극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가 되어 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무극과 태극을 함께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은 현실의 세계를 초월하는 태극을 설명하기 위해서 무극의 개념을 끌어왔다고 보면 됩니다.
이러한 주희의 해석은 모든 학자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닙니다. 특히 육구연 형제들에게 비판받습니다. 그래서 무극 이태극이라는 구절에 대한 해석을 두고 주희와 육구연의 무극 이태극 논쟁이 일어납니다. 이 논쟁의 요지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육구연은 “태극도설”이 주돈이의 책이 아니라고 보았으나 주희는 주돈이가 썼다고 주장합니다. 무극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주희는 무극이라는 표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육구연은 필요 없다는 입장입니다. 극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육구연은 극을 모든 것의 표준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였고 주희는 극을 최고의 개념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둘이 공통되는 점이 있다면 주희는 형체가 없으나 이치가 있다는 성리학의 최고 개념인 리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무극이 필요하든 필요하지 않든 태극을 최고 개념으로 간주한 것은 공통됩니다.
이들은 끝끝내 사상적 견해를 좁힐 수 없었다 이것은 성리학적 세계관에 대한 그들의 서로 다른 인식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학과 심학이라는 서로 다른 이론체계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희와 육구연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희는 만물이 각각 리를 품고 있으며, 인간도 리를 품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가치의 근원인 리를 품고 있는 이상 본래 선한 존재이며, 기의 차이에 따라 안에 있는 리도 각각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은 리를 가지고 있지만 육체적 요소인 기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희는 리와 기의 결합체로서의 마음과 순수한 리인 성을 구분하여 성즉리를 인정합니다.
반면 육구연은 마음에 대해 주희와 다른 입장을 취합니다. 육구연은 마음이 본심이며 리이고 태극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한계를 자각하여 리와 기, 성과 정, 도심과 인심, 천리와 인욕 등으로 엄격히 구분하는 주희와는 다르게 인간의 선함에 신뢰를 보냅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 곧 마음이라는 주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은 리를 구비하고 있다고 하여 심즉리라고 주장합니다. 육구연은 심을 최고의 범주로 하는 심즉리 사상을 바탕으로 심과 리의 동일성을 강조합니다.
정리하자면 주희는 무극과 태극을 모두 인정하고서 리와 동일시합니다. 하지만 육구연은 태극만 인정하고 심과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육구연은 마음 자체가 모든 사물의 이치를 포함하고 있어서 대상에 대한 공부보다는 자각에 의한 마음의 공부를 강조합니다. 반면 주희는 인간을 포함한 사물 속에서 저마다 리가 내재하여 있다고 보기 때문에 사물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격물 궁리를 중시하게 됩니다. 이처럼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다양한 문제가 파생되기도 하지만 주희의 철학 체계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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